이미지에 생명을 불어넣는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 김은지.
“다양한 색깔의 폭넓은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유연한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구글의 모션그래픽 디자이너이자
‘프린트매거진(Print Magazine)’이 지목한 2013년의 뉴 비주얼 아티스트 김은지.
크리에이티브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세계적인 기업 구글에서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김은지. 그녀는 한국에서 디자인을 배우다 뉴욕의 SVA(School of Visual Arts)에 편입해 모션 디자인을 처음 접하게 된다. 시간과 체력소모가 심한 작업이지만, 형태에 움직임을 더해 시각을 배가시키는 모션 그래픽의 매력에 빠진 그녀는 다양한 기술과 감각을 익혀 학생 때부터 스타벅스나 미국의 화장품 전문샵인 ‘세포라(Sephora)’, 스타일 웹진인 ‘스타일캐스터(Stylecaster)’와 일 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했다. 세계적인 편집디자인 매체, 프린트매거진(Print Magazine)이 지목한 2013년의 뉴 비주얼 아티스트로 꼽혀 전문가들에게 먼저 인정받은 젊은 디자이너 김은지. 잘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특별함이 있는 것일까? 라고 귀여운 질투심이 든다면 그녀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확인해 볼 것.


New Visual Artists
김은지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할게요. 
안녕하세요. 뉴욕에서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김은지입니다.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 김은지 

디자이너는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직업인 것 같아요. 김은지 씨는 어떻게 디자인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녜요.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을 만나고, 수다 떠는 거나 낙서하기 그리고 컴퓨터 하는 걸 좋아했어요. 컴퓨터를 끌어안고 살다 보니 제 의사소통의 수단이 컴퓨터가 되었죠. 낙서하는 습관은 지금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여기에 시각의 예민함이 더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 평소 낙서하기를 즐긴다는 김은지의 그림 

그렇다면 다양한 디자인 분야에서 모션 그래픽을 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국민대학교 공업디자인 과에 다니다가 2008년 가을에 미국에 있는 SVA(School of Visual Arts)의 2학년으로 편입했어요. SVA의 그래픽 디자인 학부는 3학년이 되면 모션 그래픽 수업을 들을 수 있는데, 전 다양한 커리큘럼 중 모션 그래픽이 재밌을 것 같아서 수업을 들었죠. 이때 처음 모션 그래픽을 접하게 되었는데, 사실 영상에 대해 아는 게 없었고, TV를 보지 않아서 제가 이 일에 빠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그런데 형태가 움직이면서 캐릭터가 더 살아나고, 거기에 스토리가 더해지니까 재밌더라고요. 흥미를 느끼면서 모션 그래픽에 매력에 점점 빠져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일은 시간과 체력 소모가 커서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힘들어요. 30초 영상을 만드는 데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개월이 걸리거든요. 그럼에도 하루 종일 작업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있는 저 자신을 발견했어요. 그 때 ‘아, 내가 이 일은 할 수 있겠구나’라고 느꼈죠. 

ⓒ SVA SCREENING 2010 INVITATION (동영상 출처 - 김은지 홈페이지)

학생 때부터 다양한 디자인 아르바이트를 경험한 거로 알고 있어요. 어떤 일을 하셨나요? 
SVA의 2학년을 마치자마자 디자인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시작했어요. 뉴욕의 살인적인 물가 때문에 일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마침 뉴욕 한인클럽 모임에서 디자이너를 구한다는 광고를 봤고 지원했죠. 그렇게 해서 처음 한 아르바이트는 포스터, 전단지 등을 디자인하는 일이었어요. 몇 달이 지나 사장님의 신임을 얻은 후로는 비즈니스 브랜딩, 웹 디자인을 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해서 제가 한 디자인이 실제 쓰이게 된 게 ‘Social Eats’라는 레스토랑이었죠. 인기 요리 프로그램 ‘탑세프(Top Chef)’에 출연해 유명해진 ‘안젤로 소사(Angelo Sosa)’가 셰프로 있는 곳이었는데, 그 레스토랑의 모든 디자인을 맡아서 했어요. 그런데 일에도 신경 쓰고, 학교도 신경 써야 했기에 쉽진 않았어요. 자는 시간을 줄이면서 커피와 에너지드링크를 매일 같이 마시면서 작업했거든요. 그렇지만, 바쁘고, 힘들었던 만큼  것이 많아요. 디자인과 연계된 비즈니스에 대한 지식을 알게 됐고, 실제 디자인이 나오는 프로세스를 보니 학교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고, 해야 할 게 무엇인지 뚜렷해졌거든요. 그때 작업했던 분들의 디자인작업은 아직도 제가 맡아 하고 있어요. 3학년 때 모션그래픽 수업을 들은 후로는 모션 그래픽 디자인에 관련된 일을 많이 했어요. 당시의 클라이언트로는 스타벅스나 미국의 화장품 전문샵인 Sephora, 스타일 웹진인 Style caster 등이 있었죠. 주로 웹비디오의 인트로 영상을 만드는 일이었어요. 이때는 프리랜서로 활동 한 거여서 클라리언트를 대하는 법을 많이 배웠어요. 이런 경험들이 실제 회사 생활에서 적응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 김은지가 디자인을 맡아 작업한 레스토랑 ‘Social Eats’의 외부모습

국민대학교 공업디자인과에 다니다가 뉴욕의 SVA로 편입했다고 하셨는데, 뉴욕행을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공업디자인과에 다니면서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번득 뉴욕에 가고 싶다고요. 그렇게 2008년 가을 SVA 2학년으로 편입을 하게 됐고, 뉴욕에 가게 되었죠.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기에 의사소통에 대한 걱정이 컸지만 일단 무작정 떠났어요. 뉴욕에 도착해서는 모든 게 새로워서 외려 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사람 만나는 걸 워낙 좋아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말을 쉽게 거는 편이고, 말이 막히면 몸짓을 써가면서 의사소통을 했거든요. 망설임이 없어서 그런지 언어와 문화를 금방 배웠던 것 같아요.


ⓒ  SVA(School of Visual Arts)의 외관 모습

현재 일하고 있는 구글 크리에이티브 랩을 소개 부탁할게요. 
구글 크리에이티브 랩은 디자이너, 필름메이커, 카피라이터, 테크놀로지스트 등등 크리에이티브들만으로 구성된, 뉴욕에 베이스를 두는 팀이에요. 구글 내 인하우스 에이전시와 같은 개념으로 시작해 커머셜 등의 크리에이티브 마케팅 작업을 주로 했었는데, 현재는 ‘구글 글라스’나 며칠 전에 공개된 풍선으로 전 세계에 인터넷을 공급하자는 ‘프로젝트 룬’ 등 전에 없던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대한 아이디어 및 디자인 콘셉트와 방향을 잡는 일이나 구글의 수많은 프로덕트를 재정립하고 하나의 브랜드로 잇는 다리 역할을 하죠. 

ⓒ Project Glass: One day... (동영상 출처 - 유튜브 Google)

ⓒ Project Loon: The Technology (동영상 출처 - 유튜브 Project Loon)

이 안에서 김은지 씨는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저는 크리에이티브 랩에서 모션 그래픽 디자인을 맡고 있고, 주로 구글의 미래를 그리는 퓨처비전 프로젝트와 로고 디자인, 애니메이션 등의 브랜딩 프로젝트를 많이 해요. 그 외에도 UI/UX 디자인, 커머셜 등의 일도 하고요.

ⓒ Google Glass How-to: Getting Started (동영상 출처 - 유튜브 Project Glass)

모션부터 UI.UK까지 다양한 일을 하고 계시네요. 그렇다면 어떻게 구글 크레이티브 랩에 소속되게 되었나요?
졸업을 앞두고 다양한 스튜디오와 얘기를 나누던 차에 구글 크리에이티브 랩에서 연락이 왔어요. 대학교·대학원을 갓 졸업했거나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각기 다른 분야의 크리에이티브 다섯 명을 뽑아 일 년간 일할 기회를 주는 구글 파이브라는 프로그램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모션그래픽 디자이너인 저를 비롯해 designer, writer, strategist, creative technologist가 지명됐죠. 


ⓒ 암스테르담에 여행갔을 때 찍은 김은지의 일상 사진

구글의 면접은 기존에 생각하는 방식과는 조금 다를 것 같은데 어떠한가요?
구글 크레이티브 랩과 면접을 카페테리아에 앉아 기다리는데 사실 설레는 만큼이나 대기업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의구심이 컸었어요. 그런데 면접을 보러 온 디자이너가 멀리서 킥보드를 타고 오는 거예요. 그때가 여름이었는데 둘러보니 미팅을 나온 사람들 모두가 반소매에 반바지, 편한 운동화 혹은 쪼리를 신은 차림이었고요. 제가 알던 대기업의 이미지가 완전히 부서지는 순간이었죠. 다섯 명의 각기 다른 크리에이티브들과 30분씩 돌아가면서 인터뷰를 하고, 마지막으로는 대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로버트 왕과 인터뷰를 했어요. 그런데 이 인터뷰가, 대게 생각하는 딱딱하고 경직된 면접이 아닌 그간의 작업과 저 자신에 대한 수다에 가까웠죠. 랩에 들어오고서 안 거지만 이곳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회사 동료를 제 2의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하루의 대부분을 얼굴 맞대고 지내니 가족만큼이나 가까울 수 밖예요. 그래서 포트폴리오를 보고 작업이 마음에 들면 각자 대화를 나누면서 이 사람을 가족으로 맞아들일 수 있을지 짧게나마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지 저희는 직장동료 그 이상으로 다 친해요. 오랜 시간 회사에서 얼굴을 보고도 주말이 되면 또 만나서 놀러 다닐 정도니까요. (웃음) 

구글은 작업 환경이 좋기로 소문나 있는데, 회사 자랑을 해보자면?
크리에이티브 랩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뭐니 뭐니 해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그 외에도 회사 내 작업 환경이 정말 좋죠. 제가 있는 곳은 본사 다음으로 가장 큰 뉴욕에 있는 오피스인데요, 네 개의 카페테리아가 있고, 세 끼 양질의 식사가 나오고, 곳곳에 과일, 스낵, 음료수 등이 있는 마이크로 키친, 게임룸, 마사지룸, 낮잠을 잘 수 있게 돼 있는 냅팟(nap pod) 등의 시설물이 있어요. 또 출퇴근 시간이 자유롭고, 개인 사정에 따라 오피스가 아닌 곳에서 일할 수도 있죠. 아, 그런데 얘기하다 보니 구글의 가장 큰 장점이 유연한 시스템인 것 같아요. 계급으로 나눠있는 게 아니고, 수평구조라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다 같이 모여 토론하며 아이디어를 내거든요. 그 중 하나가 ‘20% project’인데, 업무의 20%를 자신이 원하는 프로젝트에 투자할 수 있는 정책이에요. 해야 하는 일이 아닌, 본인이 자유롭게 낸 아이디어에 시간을 쏟는 거죠. 그 프로젝트가 어느 정도 진전을 보이면 정식 프로젝트로 진행되기도 하고요. 실제로 구글의 많은 프로젝트가 20% project 시스템에서 나왔어요. 저도 이 프로젝트로 현재 안드로이드 팀과 작업을 하고 있고, google glass 로고 애니메이션도 20% project로 만든 거죠. 


ⓒ 구글 오피스의 내부 모습 

ⓒ How it Feels 'through Google Glass' (동영상 출처 - 유튜브 Google)

다양한 프로젝트 이야기가 나왔는데,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가 작업하기 위해서는 어떤 기술들이 필요로 하나요?
모션 그래픽 디자인은 다양한 툴을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해요. 프로그램으로는 영상을 위해 만들어진 ‘애프터 이펙터(After Effects)’를 가장 많이 쓰지만, 기본적인 ‘포토샵(Photoshop)’, ‘일러스트레이션(Illustrator)’ 등의 디자인 툴과 ‘파이널 컷 프로(Final Cut Pro)’, ‘Premier(프리미어)’ 등의 에디팅 툴 그리고 Cinema 4D 등의 기본 3D 프로그램도 다룰 줄 알아야 해요. 그중에서도 3D를 많이 다루는 사람들은 영상작업을 만드는데 ‘마야(Maya) ’맥스(Max)를 주로 쓰죠. 물론 프로그램은 도구일 뿐이지만 도구가 표현의 범위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직 미숙하지만, 도구를 잘 다루는 기술적인 부분을 더하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영상에 있어 사운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사운드 편집 툴을 다룰 줄 안다면 더더욱 좋을 것 같아요.

최근 진행했던 작업은 무엇인가요?
최근 크리에이티브 랩이 뉴저지의 ‘리버티 과학 센터(Liberty Science Center)’에서 2014년에 오픈할 루빅스 큐브 전시인 ‘Beyond Rubik’s Cube‘ 프로젝트의 크리에이티브 파트너를 맡게 됐어요. 루빅스 큐브 뒤의 배경과 과학에 관한 전시인데, 저희 팀에서 브랜딩 디자인을 했고, 전 얼마 전에 있었던 전시회 론칭 갈라 쇼 오프닝 영상과 로고 애니메이션 제작을 맡았어요. 또 뉴욕 아트디렉터스클럽(ADC)과 개인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어요. 91년간 해마다 수상작을 모아 편찬해온 ADC Annual 책을 대체할 앱의 아트디렉팅을 하는 거죠.


ⓒ 루빅스 큐브 전시 Beyond Rubik’s Cube 프로젝트를 진행한  ‘리버티 과학 센터(Liberty Science Center)’

다양한 사람이 찾는 만큼 실력을 인정받은 거네요. 그러한 김은지 씨의 디자인 스타일은 어떠한가요?
스타일이 없어요. 없으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아직은 다양하게 도전해보고 있죠. 스스로 놀랄 수 있는 유연한 디자이너였으면 좋겠거든요. 제겐 제 디자인의 바라보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라 그 대상이 대중인지 특정 클라이언트인지 혹은 기업인지에 따라 스타일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개인 작업을 할 때는 되도록 여태까지 해보지 않은 걸 하려고 하고요.


ⓒ 김은지의 일상 모습

디자이너로 일을 해보니 학생 때와 다른 점이 무엇인 것 같나요?
수업과 실전의 가장 큰 차이는 아무래도 클라이언트가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어요. 학생 때는 제가 추구하는 디자인을 하고, 좋은 감각을 지닌 교수님들이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도와주니 얼마나 좋아요. 하지만 실전에는 늘 클라이언트가 있죠. 그래서 상대방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의견을 전달하고 설득하는 이 모든 과정이 어려워요. 대게 클라이언트는 디자인 언어를 모르고, 기획자의 마인드를 지녔기에 사고방식이 달라서 더 그렇죠. 모든 사람들이 다 저와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진 않으니까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방향이 제가 생각하는 디자인과 다를 경우 그걸 프리젠테이션에서 절충해내는 과정이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 SVA SCREENING 2011 INVITE (동영상 출처 - 김은지 홈페이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인 잡지 프린트매거진에서 2013 새로운 비주얼 아티스트 상을 받았던데, 어떤 상이었는지 소개해주세요.
지난 12년 동안 프린트 매거진은 매년 ‘새로운 비주얼 아티스트(New Visual Artists)’라는 이슈를 발행해왔어요. 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 타이포그라피, 사진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뛰어난 젊은 프로페셔널들을 뽑아 소개하는 거죠. 서른 살 미만의 아티스트를 스무 명을 선발하기에 ‘20 under 30’ 라고도 알려졌어요. 저도 그간 매년 여기 소개된 여러 디자이너들을 보며 영감을 얻어 왔었는데, 지난겨울 프린트 매거진에서 제가 추천을 되었다고 포트폴리오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정말 기쁘고, 한편으로 ‘과연 내 이름을 올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기쁘게도 그로부터 몇 달 뒤 축하한다는 메일을 받았죠. 인터뷰하고서는 굉장히 얼떨떨했는데, 그 덕에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알게 돼서 기뻐요.


ⓒ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인 잡지 프린트매거진의 새로운 비주얼 아티스트(New Visual Artists)이슈

지금까지 했던 작품 중 개인적으로 애착이가거나 만족하는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학교에서 했던 작업으로는 SVA ADC 2011 쇼 오프닝 영상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ADC Show는 매년 SVA 그래픽디자인/광고 학과에서 크게 하는 행사인데, 학교에서 모션 그래픽 파트 오프닝 영상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거의 한 달간 작업에 매달렸어요. 그런데 행사를 일주일 남겨놓은 시점에 제가 지금껏 해온 작품이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그래서 어설프게 이곳저곳을 수정하는데 교수님이 딱 잘라 말씀하셨어요. ‘새 작업이 전보다 더 못하면 쓰나요’ 라고요. 그 말을 듣고 일주일을 남겨놓은 상황에서 작업을 다시 시작했죠. 일주일동안 눈이 빨개져라 밤새우면서 작업해서 나온 영상이라 더 애착이 가는 것 같아요. 아무 계획 없이 무작정 음악 들으면서 생각나는 이미지를 만들어서 작업했는데, 다행히 행사 때 사람들의 시선을 모션그래픽 쇼에 붙잡아놓을 수 있어서 나름 성공이었다고 생각해요. (웃음)

ⓒ SVA ADC SHOW 2011 OPENING (동영상 출처 - 김은지 홈페이지)

작품 중 ‘Google-Maps-Endtag’을 봤어요. 로고 디자인에 느낌을 더해서 영상을 입히셨던데, 이런 작업인 경우는 어느 부분에 초점을 두고 작업하시나요?
이 작업에서 저는 Endtag, 그러니까 로고 애니메이션만 직접 작업했었어요. 영상은 저희 팀에서 디렉팅을 했지만, 프로덕션은 외주 제작되었고요. 로고 애니메이션은 짧은 순간 내에 로고가 의미하는 내용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어려울 때가 많아요. 이번에 새로 디자인된 구글맵 로고는 몇 명의 디자이너들이 수많은 수정단계를 거쳐서 나온 로고인데, 저는 거기에 3~5초 정도의 시간동안 로고의 의미를 풀어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어요. 로고 배경의 맵은 좀 더 단순하면서 추상적이었기 때문에 저는 그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지도를 좀 더 분명하게 보여주려고 했죠. 이 작업은 올바른 느낌 전달을 위해 리듬감이나 움직임의 동선, 속도 등의 세세한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단순한데?"라고 하지만 제게 그 말은 ‘어색함 없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는 뜻이기도 해요.

ⓒ GOOGLE MAPS ENDTAG (동영상 출처 - 유튜브 Google Maps)

‘GONE GOOGLE’ 또한 어떤 작품이었는지 궁금해요.
Gone Google은 구글의 Drive, Gmail, Docs, Calendar 등을 사용하는 개인 혹은 비즈니스 용도의 구글 프로덕트를 홍보하기 위한 캠페인이었어요. 이 프로젝트를 처음 맡았을 때는 비디오를 만들자는 게 브리핑의 전부였어요. 어디에 쓰일 건지, 어떤 비디오인지, 디자인이 캠페인에 어떻게 적용이 될 것인지 아무것도 틀이 잡혀있지 않은 상태였죠. 처음에는 각 프로덕트 아이콘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해 시나리오가 있는 커머셜 등 다양한 시도를 했어요. 수많은 수정과정을 거쳐 결국 로고 애니메이션으로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아이디어를 담게 된 거죠. 사실 이게 제가 구글에서 처음으로 한 로고 애니메이션이었는데, 이 다양한 프로덕트들이 하나의 브랜드라는 걸 표현하고자 아이콘으로 추상화된 구글 로고 형태를 만들었어요. 이렇게 디자인 및 애니메이팅이 된 로고는 Gone Google 메인 페이지 및 모든 캠페인 영상 마지막에 들어가게 됐죠.

ⓒ Go Google: Hall and Oates (동영상 출처 - 유튜브 Google)


ⓒ 김은지가 작업한  'Gone Google'

모션 그래픽 디자인은 짧은 시간 내에 완성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닌데, 김은지 씨의 작업 스타일은 어떤가요? 
다행히 제가 속해있는 크리에이티브 랩은 출퇴근 시간이 없어요. (웃음) 저는 전형적인 올빼미형으로 새벽에 작업하는 스타일이라 늦게 출근해 조용한 밤에 작업하는 편이에요. 낮에 회의가 없으면 돌아다니면서 사람들과 수다를 떨고요. 대개가 생산적인 수다라 대화에서 받는 영감을 토대로 밤새 작업하죠. 작업에 몰두해서 끝날 때까지 하는 편이라 밤을 새워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작업하다가 막히면 아예 다른 작업으로 정신을 옮겨버리거나 시간을 보내고 다시 시작하는 편이죠. 저는 작업 흐름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작업에 집중하고 일에 속도가 붙으면 최대한 빨리 끝내려고 해요. 작업의 흐름이 영상의 흐름에도 영향을 많이 주거든요.


ⓒ 바르셀로나에 여행갔을 때 찍은 김은지의 일상 사진

본인에게 영향을 준 인물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단연 부모님이에요. 혼자 살겠다며 뉴욕행을 결심한 저를 온전히 믿어주셨죠. 어렸을 적 누구나 꿈꾸는 독립을 ‘치기’ 대신 ‘용기’라고 믿어주신 덕에 혼자 해낼 수 있다는 증명을 해 보이려고 저도 모르게 책임감이 많이 생긴 것 같아요. 자신을 믿는 법도 배웠고요. 좀 더 멋있는 대답을 하면 좋겠지만, 제가 사실 주위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에요.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수많은 디자이너, 친구들, 동료들 모두에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딱히 집어 얘기하기가 어렵네요. (웃음)

디자이너가 가져야할 덕목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맷집과 넉살? (웃음) 그리고 실패라고 생각 되는 순간을 웃어넘기고 계속 도전할 수 있는 끈기요. 다방면으로 현상 혹은 사물을 볼 수 있는 눈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물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디자이너는 그만큼 더 깊이 있는 작업물을 만들어내거든요.


ⓒ 김은지의 일상사진

여태껏 다양한 일들을 하신 것 같아요. 인생에서 찾아온 기회를 잡으신 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예상 가능하셨겠지만, 제게 가장 큰 터닝포인트는 뉴욕에 오게 된 일이에요. 오랜 세월 지내고 자라온 익숙한 환경을 등지고 모든 게 새로운 곳으로 온 거니까요. 뉴욕에 온 뒤로는 작은 기회들이 종종 찾아왔어요. 특히 일에 대한 기회요. 재학 중에 프리랜싱 등의 기회가 오면 아무리 좋은 프로젝트라도 ‘시간이 있을까’,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힘들지 않을까’ 등을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데, 찾아온 기회를 잃고 올 후회가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매번 시도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보통 그런 기회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오더라고요. 한 곳에서 일하면서 생긴 인맥으로 다른 곳으로 연결되는 걸 보면요.

일하면서 보람을 느낀 순간이 언제였나요?
아무래도 작업이 세상에 공개되는 순간이죠. 구글에 들어와 작업한 프로젝트 중 처음으로 외부에 공개된 게 구글 글라스 비디오였는데 발표되자마자 유튜브(Youtube)에서 댓글과 조회 수를 확인하면서 신기해했던 게 아직도 기억나요. 그 외에도 제가 참여한 퓨처비전 프로젝트의 일부가 실제 안드로이드와 구글 디자인 업데이트에 영향을 끼쳤다는 걸 알았을 때 굉장히 뿌듯했어요.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한마디 부탁할게요.
뉴욕 아트스쿨에 와서 가장 처음 느낀 것 중 하나가 학생들이 자기 작업을 보여주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데 매우 익숙하다는 점이었어요. 굳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서로 작업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는 모습을 종종 봤거든요. 회사에서도 마찬가지고요. 또 많은 디자이너가 소셜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자기 작업을 공개하고 피드백을 받아요. 일종의 자신을 알리는 마케팅이기도 하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디자이너들과 대화할 기회도 생기면서 그간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들도 많이 알게 되고요. 사실 그런 식으로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클라이언트를 만나는 경우도 많아요. 조금 쑥스러워도 본인의 웹사이트를 포함해 온라인커뮤니티를 통해 끊임없이 작업을 공유하고 대화를 나누라고 추천하고 싶어요.

디자이너로서 꿈꾸고 있는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다양한 색깔의 폭넓은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유연한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작게는 웃을 수 있는 디자인을 하고 좀 더 크게는 언어를 뛰어넘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디자인하는 디자이너요. 
T F Y H


앵무새 ‘타코’의 친구
김은지의 라이프스타일

평소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사람 만나는 걸 워낙 좋아해서 여가 시간을 거의 사람 만나는 데에 쓰는 것 같아요. 특히 뉴욕에서 만난 사람들 대게가 아티스트라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영감을 많이 받거든요. 또 여행과 캠핑도 좋아해서인지 이곳저곳 잘 돌아다녀요. 시간만 나면 새로운 곳에 가보려고 하죠. 모든 여행이 그렇듯 새로운 곳에선 눈이 하나 더 생기는 기분이에요. 


ⓒ 김은지의 일상사진

뉴욕에서의 생활은 어떤 점이 다른가요? 
어마어마한 물가와 세금에도 뉴욕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도시가 지구촌을 집약해놓은 것 같아서인 것 같아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문화 예술의 중심지니까요. 다른 점이라면 글쎄요. 워낙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는 곳이라 아무래도 서로 다르다는 것에 대해서 비판적이지 않은 것 같아요. 쉽게 말하면 사람들이 남의 눈치를 안 봐요. 하고 싶은 거 입고 싶은 거 입으면서 살고 싶은 대로 살죠.

SNS를 보니 앵무새 ‘타코’와 함께 살고 계시더라고요. 홈페이지도 앵무새 이미지가 있던데, 자신을 상징하는 동물인 건가요? 
언제부터인진 모르겠지만, 늘 새를 좋아했어요. 하늘을 나는 것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것 같아요. 키가 작은 편이어서 파일럿의 꿈은 진작 멀어졌지만, 스카이다이빙을 무지 좋아하는 걸 보니 제 안에 날고 싶은 욕구가 컸던 것 같아요. (웃음) 또 어렸을 때부터 오리가 별명이었어요. 제가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에 나오는 엉뚱하고, 말을 안 듣는 오리캐릭터 ‘고라파덕’과 닮았데요. 저도 그 캐릭터가 좋고요. 그래서 제 웹사이트 주소도 오리-케이-디자인이에요. 오리에 대한 애착으로 시작한 조류 사랑이죠. 새를 좋아하는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갈매기 조나단과 해적선의 앵무새의 영향인지 새는 제게 자유로운 이미지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와 함께 사는 오색앵무 ‘타코’도 집에선 날아다니고 싶을 때 날아다니라고 풀어두죠. 타코가 요즘은 말을 배워서 좀 수다스러워졌는데 그 모습을 본 친구들이 저랑 타코가 닮아간대요. 앵무새야 사람 흉내 내기로 유명하지만 가끔은 제 행동이나 말투가 타코와 비슷해질 때가 있는 것 같아요. 


ⓒ 김은지가 키우는 앵무새 '타코'


ⓒ  앵무새 '타코'와 함께 찍은 사진

최근 관심사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한 가지에 몰두하지 않고, 관심을 여기저기 나눠놓는 편이에요. 한동안은 웹 코딩을 공부하다가 일러스트레이션에 관심이 옮겨졌는데 얼마 전부터는 사진과 영상 촬영에 관심이 생겼죠. 특히 찍는 과정만큼이나 보정에 집중하고 있어요. 촬영 당시의 느낌이나 제 기억에 남은 잔상과 최대한 가깝게 만드는 연습을 하는 중이에요. 


ⓒ 김은지가 여행갔을 때 촬영한 사진


ⓒ 김은지가 여행갔을 때 촬영한 사진

디자인 영감은 어디서 얻는 편인지 궁금해요. 
저는 테크마니아라 스마트폰, 타블렛, 랩탑을 끼고 살아요. 웹은 제 생활공간이나 다름없어서 틈만 나면 스마트폰으로 뉴스 혹은 소셜 네트워킹 앱을 뒤적거리죠. 디자인 영감을 얻기 위해서는 보는 건 아니지만, 테크, 디자인, 시사에 관한 기사를 접하면 자연스럽게 디자인에도 영향을 끼는 것 같아요. 제 일이 사회 현상이나 트렌드에도 민감하기 때문에 정보를 두루 알고 있어야 좋거든요. 제가 랩탑을 포함한 전자제품에 손을 떼지 않지만, 아이디어 노트는 항상 갖고 다녀요. 보고 느낀 짧은 생각들을 재빠르게 디자인 아이디어를 표현하고, 끄적거리기엔 역시 펜과 종이가 최고인 것 같아요.


ⓒ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 김은지의 작업환경

홈페이지를 보니까 드로잉도 하시던데, 평소 그림을 자주 그리는 편이신가요?
그림이라기보단 수없이 낙서하는 것 같아요. 타이포그라피도 디자인이니까 디자인 연습을 하는 거라고도 할 수 있겠죠? (웃음) 어렸을 때도 늘 낙서하는 걸 좋아했어요, 글씨를 멋있게 그려보고, 평소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으면 그때그때 그려놨어요. 거기에 어떤 생각을 하면서 그린 것인지 내용도 달아놓았고요. 여행 다닐 때는 그림을 특히 많이 그리려고 해요.


ⓒ 평소 낙서하기를 즐긴다는 김은지의 그림

평소 주위 사람이 말하는 김은지는 어떤 사람인가요?
주위 사람들에서 저에 대해서 물어봤을 때 가장 처음 받은 대답이 ‘외계인’이었어요. (웃음) 또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봤는데, ‘검은색의 반대가 흰색만은 아닌 사람’, ‘긍정적이고, 자유로운 사람’이 있었죠. 또 재밌는 대답 중에 밤새 일하고도 놀러 다닐 체력이 있다고, ‘초인’이라는 말도 들었어요. 대부분 밝고, 긍정적이라는 얘기를 해주더라고요. 

한국에 오면 무엇을 하고 싶나요?
한글 타이포그라피 공부요. 한글만큼 대단하고 아름다운 언어가 없다고 생각해요. 한글은 역사가 있고 과학적이라 꼭 심도 있게 공부하고 싶어요. 그 외에도 디자이너, 개발자 친구들과 모여 스타트업 같은 스튜디오에서 일을 해본다든지, 음악, 엔터테인먼트 쪽의 영상 프로젝트를 해보고도 싶어요. 외국에 있다 보니 오히려 한국의 문화에서 나오는 디자인에 대해 더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거든요. 한국에 가면 좀 더 한국 색이 강한 디자인을 해보고 싶어요. 

디자이너로서 살아가고 있는 김은지 씨의 삶이궁금해지네요. 앞으로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싶으신가요?
정글에서 살고 싶어요. (웃음) 정글에서 새들과 사는 거나 아르헨티나에서 농사지으면서 사는 게 소원이에요. 그렇지만 아직 둘 다 가본 적이 없죠.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녀 보고 싶어요. 요즘은 남아프리카에 펭귄이 멸종위기하고 해서 펭귄을 구하러 가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쓸모 있는 인간이 되자’는 게 제 궁극적인 목표인데 아무래도 제 전문 분야가 있으니까, 언젠가는 제가 잘할 수 있는 일로 세상에 도움을 주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웃음)

마지막으로 큐비즘 매거진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할게요.
긴 저의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계 곳곳에 대단한 한국인들이 참 많아요. 그 덕에 점점 한국에 관한 관심도 쏠리고 있다는 걸 직접 느끼고 있고요. 큐비즘과 인터뷰를 한 만큼 저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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